LIFE/단상

2019.11.15

tender.97 2019. 11. 15. 23:41

오늘 케이스 두개가 취소돼서 센터장님과 얘기 할 시간이 있었다. 교수님도 상담하기 싫은 내담자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"당연히 있지, 그럴 때는 왜 상담하기 싫은지 나를 보지."라고 대답하셨다. "내가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면 빨리 놓아주는 것이 나아"라는 말이 귀에 맴돌아서 "사람에게는 누구나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. 그 부분이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언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?" 라고 조금 후에 질문드렸다. 교수님은 "받아들일 수 있을 때 받아 들이지. 극복할 수 없다는 건 미련이 남아서인가? 바꾸어보고 싶어서? 그래서 후회가 남나?"하셨다. "선생님 나이 때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애.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 같거든. 내 경험을 돌아봐도 그래. 후회가 남지 않을만큼 최선을 다 해 보는 경험은 중요한 거야. 그런데 선생님, 그게 선생님을 너무 힘들게 하거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면 안되는가보다 하고 놓아보는 것도 중요해. 막상 놓아보면 놓아지는 것들도 꽤 있어.."

진정한 충고는 사과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말하면서 자신의 마음도 아파야 한다고 했다. 내가 지금껏 타인에게 해왔던 말들은 충고를 가장한 허영이었나보다. 교수님이 하셨던 말들은 나 역시 살면서 남들에게 잘만 내뱉었던 말이었지만, 그것은 맞는 말임을 알고 적절한 상황임을 고려해서 내뱉은 일종의 계산이었음을. 상담이건 미술치료건 생의 후반에 제대로 해보고 싶어진 것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이다. 내가 지금 공자의 논어를 달달 외고 니체의 사상을 맹렬히 좇는 글을 쓸지언정 내가 내뱉은 논어의 무게는 무척이나 가벼울 것이고 니체를 경외하는 글 역시 다만 열띤 활자일 뿐 도무지 마음이 아플 수가 없는 것이다.